A garden of ordinary memories
내게는 정원이 하나 있다. 이 정원은 대단하지는 않지만 단 하나의 정원 이긴 하다. 정원의 실체나 형태는 사실 딱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원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것이다. 
정원사가 하나 있는데, 이 정원사는 그리 부지런하지 않다. 그렇다고 게으른 것도 아닌 아이다. 이 아이는 꽤 오랜 시간을 아이로 살고 있지만, 나이는 삼십대 중반 앞으로 나이를 계속 먹을 것이다. 

정원사의 일은 서성거리기, 머무르기,앉아 있기, 멍때리기, 아무것도 안하기, 등등으로 꽤 많은 일들을 하는데 이 정원사가 가장 신경 쓰는 일은 놀이를 하는 것이다. 특히 숨바꼭질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숨어있는 걸 찾는게 재밌다고 한다. 

내가 언젠가 말해준적이 있다. 예술은 숨바꼭질 같다고...어디에나 있지만 알려면 찾아내야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라고 

정원사는 그후로 자기가 지나온 알고 있던 길들을 둘러 보기 시작했다. 혹시나 놓친게 있는지, 떨어뜨린건 없나? 여러가지를 많이 모아 둬서 쓸데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나름 의미를 가지는 물건들이 보인다. 좋아했던 장난감, 주위에 항상 머물었던 사각형의 건물들, 그가 동경 했던 것, 아련한 분위기 라던가... 
나에게 여러가지를 가지고 실험해 보라고 추천한다.

정원사의 노력부족일까? 그가 게으른 것일까? 가끔 이게 왜 여기에? 이런 것들이 있다. 왜 그랬어? 라고 물어보면 그건 나 때문 이란다. 내가 주워 담았다고...난 아니라고 하지만 정원사는 단호하다. 그때 부터 이불을 뻥뻥 차는 버릇이 생겼다.
무턱대고 올라오는 이미지들을 보면 나는 답답하지만 정원사는 어딘가를 이리저리 손질한다. 그가 정리해준 정원엔 나를 향한 애정이 담겨 있어 그런지? 아님 이게 애증이란건지 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냥 따뜻한 느낌이 든다.

정원사는 내 기억을 고고학자처럼 발굴하는데, 긴시간을 살아 오진 않았지만 기억이 눈처럼 쌓여있어서 그것을 치우고 덜어내야한다고 말한다. 

먼지를 터는 건지, 눈을 치우는 건지 그는 기억으로 구성된 여러 정원을 지나며 나름의 일을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게 해낸다. 
가끔 그가 길을 잃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그런 정원을 마주 할때...그는 그런곳엔 자기 자신의 흔적을 남겨서 나에게 길라잡이를 해주기도 한다. 내 정원인데 쓸데 없는 걱정을 한다. 그의 따뜻함 때문에 내 정원엔 사시 사철 자연이 무성하다.

이 친구는 정원에 있는 나무들을 걱정한다. 이 나무들은 아주 어릴적 부터 가로수 처럼 심어져 있었는데 내가 나이를 먹으니 그 시간에 비례해서 쑥쑥 큰다. 숲이 성장하는건 보기 좋지만 안을 들여다 보기가 힘들다. 
일 하는데 지장이 많다고 어찌 해보라고 정원사가 자주 말한다. 그런데 별 방법이 없다. 내 안에 정원은 내 머릿속 해마처럼 자라기만 하는걸. 
이런 대답을 들으면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속 마음이 보이지만 뭐라고 못하겠다. 
그가 하는 일이 비록 보통의 다른 정원사와 크게 다름 없고 대단히 유능 하지는 않지만 그는 내 정원의 단하나의 유일한 '정원사'기 때문이다. 

말을 거는 정원
정원사가 말했다
‘네 일상과 흔적을 수집하면
그것이 모여서 너의 공간을 채워줄 것이라고
공간이 채워지면 너의 정원이 그곳에 생길 거야’
 
그 말을 듣고 나는 뒤를 보았다


그제야 그곳에 아무렇게나 있었던
풍경과 물건들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웠다고 지금 다시 널 만나 기뻐 라며


나의 흔하고 의미 없던 것들이 드디어 정원속에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움이 남긴 정원
정원엔 다롱이, 병아리, 바다같은 호수, 배 밭, 밤나무 밭, 높이 선 멋진 아파트 , 푸른 나무들 , 눈 덮인 나무가 있었다.
 나는 다롱이와 함께 그 곳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리고 여러가지 일들을 겪었다
매미 잡고 개구리 잡고 새도 잡았다.
어떤 날은 벌통을 구경하다가 벌에 쏘여 할머니가 온몸에 된 장을 발라준 날도 있었다.
그리곤 툇마루에 아픈 몸을 뉘이고 달력 뒷장을 뜯어 가득 그림을 그려 넣었었다.
나를 쪼던 흰닭이 백숙이 되어 식탁에 올라왔던 날.
눈이 가득히 쌓인 마당에 눈사람 만들려고 눈덩이가 너무 커져서 결국 쌓지 못했지만 만들었던 눈사람보다 더 기억나던 눈덩이.
빙어를 잡으려고 할아버지와 같이 배타고 나갔다가 노를 저어보고 할아버지가 달리 보이던 날.
밤이 되면 카레 냄새 된장찌개 냄새 따라 집에 가던 날.
씽씽이 타던 친구들이 부러워 멀찍이 바라봤던 날.
나의  평범했던 일들은 이젠 사라져 없지만 내 마음속의 정원에는 그리움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그리움의 모습을 한 정원을 만나기 위해 나만큼의 나이를 먹은 어린 아이를 찾아 간다.
정원에서 만나는 그 친구는 이제는 정원사 라는 이름으로 나를 그리움으로 안내한다.

Nostalgic garden
내 정원의 정원사는 특별한 정원에 있는줄 알았다.
이곳은 개성있고 재능있는 사람의 정원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 이었다.
내 정원은 남다를 것이 없는 평범하고 튀지 않는 곳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정원사는 특별함에 흥미를 잃었다.
오히려 평범한 것들을 관찰했다. 그런 관심에 그는 자연에 이끌렸다 
그의 눈에는 주위에 흔한 나무,풀 등이 내 정원에 더 어울려 보였다.
 
정원속의 자연물은 나의 기억과 시간을 따라서 성장하고 혹은 사라지고는 한다.
정원사는 그것을 따라서 정원을 관리 했다.
너무나 평범한 정원이라 정원사는 더 신경을 많이 썼다.
사라지지 않도록, 스치듯 지나는 평범한 것들은 특별하지 않아서 더 쉽게 사라지기에
그것들이 의미가 되길 바라는 그의 마음이 내 정원 곳곳에 깃들어졌다.
 
 
정원사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의심을 한다.
‘특별하지 않은 이도 작가가 될수 있을까?’
그때의 나와 정원사는 정원을 열심히 헤집고 다닌다.
혹시나 특별함이 있을까봐 특별함을 찾는 것은 나와 정원사에겐 끝나지 않는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았다.

 내 정원을 둘러 보면서 나와 정원사는 오랜 일기장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곳에는 다시오지 않을 시간들이 머물러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들이 평범해서 쓸데 없지만,
하염없이 그곳을 바라보게 하는 것은 분명 남아있지만
존재하지는 않는 어떤 아련한 감정,
그것은 그리움과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정원사에게 말했다.
‘그리움은 작가가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세상이 그렇다고 뒤돌아 보기 보다
앞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새로움과 창작은 그런것’이라고

하지만, 정원사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내게 답답하다고 말하는 그는 내가 열심히 일기를 쓰던 때의 나를 보여준다.
 
그때의 나는 조그만 스텐드 불빛 아래서 평범한 내용의 하루를 꾹꾹 눌러 담아두고 있었다.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그 조그만 등을 정원사와 하염없이 바라볼뿐 이었다.